임권택, 김훈의 '화장' schönen worte



임권택 감독님의 '화장'에 대한 기사들을 좀 들여다보다가, 원작을 읽어보려 도서관에 갔다. 축축하고 눅눅한 기운이 공기 중에 둥둥 거리던 저녁 시간. 지역 도서관의 디지털 자료실에서 공익 근무를 한다던 아는 동생이 떠올라 그에게 줄 오렌지, 블루베리 주스 두 병을 사갔는데 오후 6시 퇴근 이후라 자리 비움 상태였다. 내일 아침에 와서 먹겠지 싶어 데스크 위에 조용히 올려놓고 나오는데 뭐랄까 묘한 느낌이었다.


'화장'이 대상을 탔던 2005년도 이상문학상 작품집과 함께 몇 권을 더 대여해왔다. 정이현의 소설들. 2005년-6년즈음 연재한 것들을 묶어 냈던 첫 장편 '달콤한 나의 도시'를 나도 그 당시 읽긴 읽었다만, 적당한 국산 연애 영화 혹은 미제 트랜디 드라마 같은 이미지로 느껴져 후반부엔 적당히 스킵하며 읽었던 기억이 난다. 순전히 개인적인 취향이다만, 소설 속 문장들이 건조한 것은 나름 좋으나 가볍게 느껴질 땐 훅 거부감이 든다. 이후 그 소설이 배우 최강희를 주연으로 드라마화 되었다고 해서 '역시나 그 느낌이었어' 했었다. 지금 생각해도 상당한 선입견 및 주관적인 취향의 일로지만 이런 부분들은 사실 어쩔 수 없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나중에 접했던 '삼풍백화점'은 꽤 괜찮았었다. 그 생각을 떠올리며 적당히 쉽게 읽을 소설로 정이현 작품을 빌려왔는데, 서너 챕터를 읽다 잠들어버렸다. (역시 내 취향이 아닌가보다)


새벽녘에 깨어 김훈의 '화장'을 읽었다. 소설에서 병원과 장례식장의 짙은 냄새, 언밸런스하게 화장품 냄새도 난다. 주인공을 짓누르고 있는 인생의 고가 나에게까지 저릿저릿 전달된다. 병원 안에 있다보면 일종의 삼라만상 같은 것이 자욱하게 깔려있는 느낌을 받는다. 수많은 사람들, 수많은 질병, 크고 작은 고통, 그리고 그 속에서 만들어질 다양한 생각들... 아픈 자와 아픈 자를 바라보는 자 사이의 간극에는 생과 사에 대한 현실과 상념이 얼마나 많을지. 고통스럽게 암 투병 중인 아내를 돌보는 남편 오 상무가 죽음과는 극단에 서 있는 부하직원 추은주, 꿈틀거리는 건강한 생명력을 대변하는 여자를 바라보게 되는 과정은 어찌보면 인간의 심리로써 어쩔 수 없는, 실로 자연스러운 과정이 아니었을런지. 


김훈은 수상 소감에서 "슬픔을 그저 슬퍼하는 글이자 본인의 졸작"이라고 나즈막히 밝혔지만, 단편 몇 페이지 안에 삶의 무거움 그리고 연모와 연계된 탈출 심리를 이렇게 압축적이고도 감각적으로 표현한다는 것이 상당히 대단하다는 생각을 했다. 오 상무 역을 맡은 배우가 안성기씨여서 무척 적역이지 않나 싶다. 마음에 드는 문장들을 여기 옮겨 적고 싶었는데, 지금 보니 양이 많아서 패스. 영화는 개봉날에 보러 가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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